새벽 4시 반. 끈적한 공기. 부우우웅 선풍기 모터도는 소리. 베란다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
선영은 번뜩 감은 눈을 떴다. 다음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그녀는 머리맡의 분홍색 배개를 집어 들고 배란다로 나갔다. 드르륵 시커먼 방충망을 밀어낸 선영은 망설임 없이 배개를 힘껏 창밖으로 던졌다.
툭.
배개는 주차장 선이 그려진 아스팔트 바닥위로 떨어졌다. 선영의 집은 3층이다. 낮은 층이었지만 어두워서 배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선영은 난간에 턱을 괴고 자신이 던진 배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밖으로 떨어진 배개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다. 조용하게 떨어져서 땅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동이 터오르면 부지런한 사람들이 한 두명 집 밖으로 나서겠지. 그리고 땅에 떨어진 분홍색 배개에 시선을 한번 줄것이다. 그리고 우리 동을 슬쩍 올려다본다. 밖에 널어놨다가 떨어트렸나? 그는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배개에 의구심을 품다가 이내 제 갈길을 간다.
선영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여전히 배개는 아파트 밖에 있었고 오늘 밤에 잘려면 배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새벽에 배개주우러 밖으로 나간다고? 이대로 모른척 자버릴까 했지만 내일 아침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가 '너 배개 어쨌니?'하고 의뭉스럽게 추궁할 게 분명하다. 저 배개를 회수하지 않는 상황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저 배개가 있을 곳은 아파트 주차장이 아닌 내 잠자리인걸. 선영은 배개를 던진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 너무 바보같고 하찮게 느껴졌다.